연구&발제

[발제]권리로서의 기본소득: 쟁점과 이해(2편)

[편집자주] 본 글은 정책연구모임인 여의도포럼에서 토론한 내용으로, 벨기에 반 파레이스 교수가 쓴 [21세기 기본소득]과 한신대 강남훈교수가 쓴 [기본소득의 경제학]을 발제한 내용입니다.

 

[1편에서 이어서 계속]

 

다. 기본소득과 노동유인

 

기본소득에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기본소득을 주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최소소득보장 비해서 가지는 장점은 중 하나는 ‘복지함정’이 없다는 것이다. 복지함정이란 복지 수혜자가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일을 하지 않고 복지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최소소득보장과 비교할 때 기본소득은 도움을 받는 저소득층 사람들의 노동유인을 크게 만든다.

구체적인 숫자 예를 가지고 살펴보자. 정부가 1인 최저생계비를 월 30만 원(3인 가구 90만 원)으로 정하고, 1인당 소득이 30만 원 이하인 모든 사람에게 30만 원의 소득을 보장하는 최소소득 보장 정책을 펴기로 했다고 가정하자. 어떤 일이 생길까? 첫째로, 3인 가족을 대표해서 90만 원 이하로 월급을 받고 일하던 사람들이 일을 중단할 것이다. 한 달 열심히 일해서 90만 원을 벌면 복지 혜택에서 제외되므로 소득은 90만 원 그대로이다. 그런데 놀아도 1인당 30만 원씩 보조금이 나오므로 세 사람분을 합치면 90만 원이 된다. 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둘째로, 복지 수혜를 받는 중에 90만 원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일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90만 원을 조금 넘는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일을 안 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바로 복지함정이다.

기본소득인 경우는 다르다. 1인당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주면, 3인 가족 90만 원 소득이 보장된다. 시장소득에 대한 기본소득세율이 10%라고 가정하자. 이때 90만 원 일자리에서 일하면 가구소득은 171만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선별복지와 비교하면 저소득층에 대한 노동유인이 훨씬 크다. 가난해서 남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일자리가 생겼을 때 기꺼이 일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일 것이다.

(편집자주: 일을 하든 안하든 기본소득이 지급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을 하게 될 경우 일한 만큼 자신의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이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기존 전통적 복지제도에서 문제제기 되어왔던 노동유인 감소문제를 극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s://cukkyoji.tistory.com/108 [성심교지편집위원회])

 

기본소득인 경우, 노동 유인을 떨어뜨리는 효과는 저소득층이 아니라, 고소득층에서 나타날 수 있다. 기본소득을 재원 마련을 위해 기본소득세가 부과되면 그만큼 노동 유인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소득층의 노동시간 감소를 우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소득층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좋은 일자리를 나누는 효과도 있으므로 오히려 사회적으로 바람직할 수 있다.

오늘날 맥락에서 더 중요한 관심은 최소소득보장의 형태로 기초소득을 보장하는 경우와 비교할 때 기본소득을 보장하면 노동유인이 줄어드는지 여부이다. 이미 선진국 대부분 나라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최소소득을 보장하고 있다. 실업부조를 예로 들어 보자. 경제활동인구에서 5% 이내가 실업부조를 받을 때는 그 사람들이 실업함정에 빠지더라도 경제적으로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실업부조를 받아야 하는 인구가 10% 이상으로 늘어나면 실업함정이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


핀란드에서는 실업자가 늘어남에 따라 실업부조를 받는 사람의 노동유인을 높이기 위하여 자격심사가 엄격해지고, 노동조건이 가혹해져서 인권침해 사례까지 생기고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이론적으로 보면 기본소득은 실업부조 같은 최소소득보장에 비교해서 저소득층의 노동유인이 크다. 핀란드에서 2017년부터 하려는 기본소득 실험은 실업부조와 기본소득의 노동유인을 비교함으로써 기본소득이 실업함정이 적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에서 구체적인 재정 모델을 통해서도 실업함정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말콤 토리(Malcolm Torry)는 영국을 대상으로 해 조세 중립적인 시민 배당(citizen’s income) 모델을 제시했다.*

*토리는 기본소득이라는 용어 대신에 모든 시민은 배당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시민배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조세 중립적 모델이라는 것은 조세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서 기존 조세 및 복지 제도를 조정해 시민 배당을 지급하는 모델이다. 토리는 시민 배당 제도 아래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 소득과 주당 노동시간 사이 관계를 최저임금에 따라 계산했다. 그래서 기존 선별적 복지 제도 아래서는 상당한 실업함정이 생기지만, 시민 배당으로 바꾸면 실업함정이 상당히 줄어든다는 것을 도출했다.


마지막으로 실험과 관련, 한 가지 더 지적할 점이 있다. 2017년부터 진행될 캐나다 온타리오 주 기본소득 실험과 관련해 한 가지 중요한 제안이 있었다. 그것은 노동유인을 검토할 때 ‘노동’이라는 의미를 임금노동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Forget et al., 2016) 1970년대 실험을 검토할 때에는 임금노동시간 감소 여부만을 검토했다. 그런데 앞에서 지적하였듯 노동시간 감소에서 상당 부분은 그냥 일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가사노동이나 자기개발 투자 때문이었다.

임금노동은 감소했지만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노동은 증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가사노동이나 자기개발 이외에도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자원봉사, 시민단체 활동 등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노동이 증가한 것으로 해석하고 조사 대상에 넣어야 할 것이다.

 

 

5. 제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

 

가. 일자리 감소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시작된 제3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로봇, 사물 인터넷, 빅 데이터 등이 중심이 된 제4차 산업혁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간이 하는 육체적 노동뿐만 아니라 정신적 노동도 대체할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나온 보고서는 미국 전체 고용 중 47%가 컴퓨터가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직종에 속한다고 예측했다. (Frey and Osborne, 2013: 38)


인공지능에 의해서 사라지는 직업이 있지만 생기는 직업도 있을 것이므로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고 전망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2016년 다보스 포럼 보고서는 없어질 일자리와 더불어 생겨날 일자리까지 예측했다. 그 결과 선진 15개국에서 2020년까지 71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고(그중에 2/3는 사무행정직 일자리이다) 200만 개 일자리가 생겨나서 전체적으로 일자리 510만 개가 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WEF, 2016: 13)


일자리가 감소했을 때 정부 정책에 의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창출할 여지가 많다. 공무원, 공기업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국가에서 아주 낮은 상태기 때문이다. (OECD 통계 조사) 그러나 북유럽 수준으로 공공부문 고용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제4차 산업혁명으로 감소하는 일자리를 공공 부문에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공공부문 일자리는 가장 비싼 기초생활 보장 방법이다. 공공부문에서 추가로 고용하려면 공공부문 평균임금에 해당하는 예산이 필요하지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최저 생계비(기본소득 금액)에 해당하는 예산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간부문에서 일자리 창출은 정부에서 강제하기 힘들다. 이미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 감소가 심각한 상태다. OECD 최고 수준인 자영업 비율은 민간 부문 일자리가 부족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앞으로 제4차 산업혁명 충격이 더해질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로봇 도입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면 더욱 로봇 사용이 증가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일자리가 감소하는 경제에서 사람들에게 최소한 생활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조건부 소득 보장은 아무리 조건을 강화하더라도 노동유인을 없애기 때문에 일자리가 부족할수록 점점 더 강화된 조건과 감시가 필요하게 된다. 기본소득은 저소득층에서 노동 유인을 없애지 않기 때문에 일자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최소생활을 보장하는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나. 일자리 불안정성

 

제4차 산업혁명이 인간이 하는 지능적인 노동까지 대체하기 때문에 현존하는 일자리 중 상당 부분을 없앨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만약 다보스 포럼에서 나온 전망처럼 인공지능이 많은 수에 달하는 현존하는 일자리를 없애면서 적은 수의 일자리만 생겨나게 한다면, 기본소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필요하게 될 것이다. 하나는 사람들의 최소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이 생산한 부에 대한 수요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장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하더라도, 일자리가 없어지는 시점과 생겨나는 시점 사이에 시차가 있는 경우, 기본소득은 여전히 생존을 보장하고 거시경제에서 수요를 확보하는 데 필요할 것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바로 생겨난다고 하더라도, 없어지는 일자리에 종사하던 사람이 생겨나는 일자리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 학습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 동안 기본소득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기본소득이 아니라 실업부조 같은 선별적 소득보장 정책으로도 최소생활을 보장하고 거시적 수요를 확보하는 기능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실업보험은 일정한 동안만 제공되므로 장기적 실업에 대응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선별적 소득보장 정책이 노동유인을 없애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그런 기능을 잘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복지국가가 실업률 3% 정도에 달하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인구중 3% 정도되는 실업자들에게 실업부조를 제공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안 된다. 설령 실업부조를 받는 사람들이 노동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가장 생산성이 낮은 3%인구가 노동하지 않더라도 나머지 97%가 생산한 것으로 충분히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실업률이 10%를 넘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10%가 넘는 인구에 노동유인을 없애는 복지를 제공하면서 효율적인 경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기초생활을 보장하면서도 노동유인을 줄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기본소득은 저소득층이 갖는 노동유인을 없애지 않기 때문에 최소생활을 보장하는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핀란드와 네덜란드에서 2017년부터 실행할 실험을 하는 목적도, 실업부조를 받던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해 줄 때 인권 침해적인 노동 강제 없이도 노동유인이 높아지는지를 실증적으로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불안정노동(precarious work)은 직업 안정성이 낮고, 임금이 낮고, 사회보장(연금, 건강보험, 실업보험) 수준이 낮고, 해고 보호 장치가 없고, 직업 훈련이 낮고, 작업장 안전도가 낮고,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고용을 지속할 가능성,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 정도, 규제를 보호하는 정도, 소득 수준 등을 기준으로 판별한다(Standing, 2011).

불안정노동은 지구화, 시장만능주의 정책, 서비스 산업 비중 확대, 정보기술 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불안정노동자 계층을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precarious proletariat)라는 의미에서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고도 부르고 있다. (Standing, 2011)

 


[그림 3-] 영국에서 0시간 노동자의 수(천명), 자료: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2016)

 

영국에서 1996년 합법화된 영시간계약(zero hours contract)은 불안정한 일자리가 극단적인 모습을 한 형태이다. 영시간 계약이란 근로시간을 특정하지 않고 고용주가 원하는 시간에만 일하는 고용계약 방식이다. 급여는 일한 시간만큼만 지급된다. 따라서 자기 주급이나 월급이 얼마가 될지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 영국에서 영시간계약 노동자는 90만3천 명으로 전체 고용자 중 2.9%로 추정된다. 다음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 2014년 이후 급등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불안정한 계약으로 이루어진 경제를 흔히 긱 경제(gig economy) 또는 온 디맨드 경제(on-demand economy)라고 부른다. 미국 상무부(Department of Commerce)는 긱 경제를 다음과 같이 “디지털 매칭 경제(digital matching economy)”로 정의했다.

1) 모바일 앱이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IT기기를 활용한 P2P거래
2) 플랫폼에 대한 신뢰도 제고를 위해 공급자와 수요자를 상호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보유
3) 서비스 공급자가 자신이 일하고 싶은 시간 및 기간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적 유연성
4) 서비스 공급자가 소유한 도구와 자산을 이용해 서비스를 제공 (Department of Commerce, 2016)

카츠와 크루거(Lawrence F. Katz Alan B. Krueger)는 임시도움기구 소속 노동자, 호출 노동자, 계약 노동자, 독립계약자 또는 프리랜서(temporary help agency workers, on-call workers, contract workers, and independent contractors or freelancers)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을 대체노동계약(alternative work arrangements)이라는 범주에 넣고 그 규모를 추정했다. 그 결과 그 대체노동계약 노동자 규모가 2005년에 전체 노동자 중 10.1%에서 2015년에 15.8%로 증가하였다. (Katz and Krueger, 2016)

 

 

위 표는 우리나라 불안정 노동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표이다.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 영세자영업, 사실상 실업자를 합치면 1,690만 명으로 경제활동 인구에서 60%가 불안정노동이다. 

[3편에 계속]링크: [발제]권리로서의 기본소득: 쟁점과 이해(3편)

[1편 링크] [발제]권리로서의 기본소득: 쟁점과 이해(1편)

 

 

정리 ■ 또바기 기획팀